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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이레 1 (창세기 22장)

우리의 인생은 시험과 도전의 연속이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기근을 만났을 때 애굽에 내려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으라는 사라의 요구 앞에 서기도 했고, 이스마엘을 내쫓는 일을 만나기도 했다. 아브라함의 경우 이 많은 시험 중에서 몇이나 통과를 했을까? 아마도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 빼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 될 수도 있고 사탄에게 받는 유혹일 수 있다.

야고보서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고 시련을 견디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 말씀한다. 하지만 동시에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라고 말씀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아무도 시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맞는 것일까?

시험과 유혹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한 것 처럼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시험은 우리의 논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냐아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나여야 하는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반면에 유혹은 왜 내가 되어야 하는지, 내가 왜 받아 들여야 하는지 그 이유가 논리적으로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시험을 경험하지 않는다. 시험은 각 사람에 맞게 맞춤 제작된다. 하나님은 롯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시험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만큼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롯에게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피해 그 땅을 떠나는 것이 시험이었다.

하지만 시험은 모든 사람에게 어렵다. 나의 논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시험이 어렵다는 것을 몰랐을 때 만큼 여럽지 않을 수 있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만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발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이해나 설명을 요구하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왜 나인지, 왜 지금인지와 같이 “왜”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설명을 요구한다. 또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찾는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왜 이삭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모리아 산으로 갔다. 왜 이삭인지 심일 길을 가면서 여러번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단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이라” (창 21:12)는 언약의 말씀만을 거듭 되뇌이며 그 길을 갔다. 그리고 그가 갔을 때, 하나님이 가라 하신 곳에서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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