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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창세기 11장)

언어가 같아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의 언어가 하나였다면 최소한 미국에서의 삶에서 영어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온 땅의 언어와 말이 하나인 세상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언어였다. 그래서 언어와 말이 하나였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 뿐만 아니라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도 축복이었다.

노아 홍수 이후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좋은 세상을 찾아 이동했다. 그리고 시날 땅의 평지를 보고 그곳에 거주하며 벽돌로 성과 탑을 건설하고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결정한 동기를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말한다. 이름을 낸다는 것은 사람들로 부터 명성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명성을 얻어야 하는 이유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름을 내지 않으면 흩어짐을 당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분명히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명성을 얻지 못하면 온 지면에 흩어진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이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기 보다 흩어지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자신들의 눈에 좋게 보이는 땅으로 가려는 자신들의 죄된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신들의 악함을 가리기 위해 세상의 명성을 얻으려 한 것이다.

바벨을 쌓으려던 사람들 처럼 세상에서는 자기의 거짓을 가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 자기들의 거짓을 가린다. 겉은 선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속은 온갖 거짓으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거짓을 전하는 이단들도 거짓을 가리기 위해 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등 거짓을 가리기 위한 활동들을 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건설하는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 오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꼭 내려 오셨어야 했을까? 땅에 내려 오지 않으시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데 굳이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기 위함이고,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리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 줌으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넣어 주시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였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다. 그 결과 사람들은 온 지면에 흩어졌고 또한 탑을 건설하는 것도 그쳤다. 성경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은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땅에 흩으셨다. 앗수르에 의해, 바밸론에 의해 온 지면에 흩어지게 하셨다. 당시의 상황이 노아 홍수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하나님은 홍수와 같은 더 엄한 방법을 왜 사용하지 않으시고 땅에 흩으시는 방안을 채택하신 것일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악함을 아시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하나님이 사람들과 맺으신 언약 때문이다. 사람들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당함으로 결국 도시 건설하기를 그쳤다. 이들은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시고 홍수 대신 온 지면에 흩으신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종한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어서 포기한 것일까? 아마도 후자의 쪽이 가까울 것이다.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심으로 할 수 없이 건설을 그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지 다시 그 탑을 건설할 것이고,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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