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아내 사래의 이름을 공주를 의미하는 사라로 부르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사라에게 복을 주시어 열국의 어머니가 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아브라함이 사라를 공주와 같이 여기지 않았기 때문을 아닐까? 사실 까까운 사이 일수록 더욱 귀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가정에서 그리고 가까운 사이에서 상처를 많이 받는다.
사래는 어떠했을까?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브라함과 결혼을 한 이후, 결코 편한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혼했음에도 자녀가 없는 고통 가운데 있었고, 고향을 떠나 집도 없이 떠돌아 다녀야 했으며, 심지어 누이로 취급을 받고 자녀를 얻기 위해 종을 남편에게 주어야 했다. 인간적으로만 볼 때 사라의 삶은 누구보다도 불행한 삶이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내를 공주라 부르게 하셨다. 아브라함 마저 아내의 이름을 사라라 불러주지 않는다면 사라는 그 어느 곳에서도 사라라는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내의 이름을 사라라고 부르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의 반응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서도 의구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나이가 이미 100세에 가까웠고 아내 또한 90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이라기 보다 자신과 사라의 나이를 생각해 볼 때 상상할 수 없는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자기의 현실 때문에 이스마엘이 아닌 다른 상속자를 낳는 것을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자기의 현실과 타협한 것일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요청에 대해 ‘아니라’고 잘라 말씀하시며,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을 것이고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스마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어 매우 크게 번성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말씀하신다.
불신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언약을 세울 것과 이스마엘에 대해 약속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아브라함이 육체의 한계와 인간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사라를 통해 상속자를 주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따를 수 있도록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그 날에 자기와 이스마엘과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에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구심을 보였던 아브라함이 자기와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자 하나님께 즉각적인 순종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내년 이 시기’라는 말씀에서 소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소망하는 삶이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누리는 것이 많아도 소망이 없으면 하루 하루의 삶은 고통이다. 오늘 하나님은 소망을 잃어가는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그 소망을 찾게 해 주셨다. 이제 아브라함은 다시 기다림을 시작할 것이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도 아니고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이 그에게 소망을 찾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그 날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할례를 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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