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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까? 돌아서 갈까? (창세기 16장)

길이 막힐 때 돌아서 갈 수 있는 우회도로를 찾는다. 그 길이 돌아서 가야하는 먼 길인 것은 알지만 막힌 길에서 기다리는 것 보다 시간적으로는 빨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래가 그랬다. 비록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얼마나 걸릴지 확신할 수 없지만, 언제일지 모를 하나님이 주실 자녀를 기다리는 것 보다 하갈을 통해 돌아서 가는 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

사래는 왜 그 선택을 한 것일까? 자기의 시간에서 하나님을 기다렸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의 시간 속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항상 조급하다. 그래서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도 있지만, 조급할 때에도 잘못된 선택을 하게된다. 반대로 하나님의 시간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다림이 믿음의 가장 큰 증거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완벽한 시간표와 완벽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 보다 자기의 시간에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안전이 보장되는 가까운 길 보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먼 길을 선택한다. 오래 걸리는 확실한 길 보다 다른 가능성을 선택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를 오래 기다리게 하셨다.

사래는 아브람에게 남아 있는 가능성을 붙잡았다.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3:1) 했던 것 처럼, 사래는 여호와 하나님이 상속자에 대한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조급함은 다른 것을 못 보게 한다. 그래서 사래는 하갈을 통해 자녀를 얻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하갈을 통해 자녀를 얻는 것만이 사래의 유일한 목표였다. 하갈이 임신했을 때, 사래는 자기의 계획이 옳았고 성공한 것 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곧 하갈에게 모욕과 멸시를 받고, 아브람과의 다툼과 분쟁이 생기고, 하갈을 학대하기까지 하는 상황 속에서 사래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툼과 분열과 학대라는 문제를 일으킨 원인은 하갈을 통해 자녀를 얻으려는 잘못된 계획 보다, 남편 탓을 하고 종을 학대하는 사래 자신과, 가정의 영적 제사장의 직분을 포기하고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도록 내벼려두는 아브람에게 있다. 사래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 편에서’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며,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브람과 사래를 향한 하나님의 현재의 계획은 기다림이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고, 여호와의 사자가 도망한 하갈을 광야에서 만난다. 그리고 하갈을 ‘사래의 여종’이라 부른며,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명령한다. 뿐만 아니라 너의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는 약속과 이스마엘이라는 이름까지 주신다. 그리고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곳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는 브엘라해로이라 부른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갈을 왜 찾아 간 것일까? 그리고 왜 다시 다툼과 분쟁이 있는 아브람의 가정에 돌아가 사래에게 돌아가 복종하라 한 것일까? 하갈 보다도 하갈을 통해 사래가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시간에서 기다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래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사래의 잘못된 결정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여종인 하갈을 통해, 사래 자신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다시 보게 하셨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게 하셨다.

사래의 일을 통해 발견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기다리며 눈에 보이는 상황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빨리 가고 싶은 세상의 유혹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잘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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